2009년 05월 05일
교과서오류[12] : 중수소 두 개가 합쳐져서 헬륨4 핵이 생기는 핵융합반응?
K사 물리2교과서 338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핵융합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나름대로 핵융합 반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쪽 핵자의 숫자도 다 맞아떨어지고 말이죠.
문제는 저런 핵융합반응이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반응"이라는 거지요.

실제로 중수소 핵 두 개가 고온에서 무작위로 충돌할 경우의 결과는 교과서의 설명과는 다릅니다. 두 종류의 반응이, 거의 같은 비율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D + D = 3He + n + 4.03MeV (50퍼센트)
D + D = 3H + p + 3.27MeV (50퍼센트)
그럼 왜 중수소 원자핵 두 개가 합쳐지면 바로 헬륨핵이 만들어지는 현상은 극히 드문 걸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이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헬륨 핵이 분해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렇게 결과만 말하고 끝나면 뭔가 찜찜하므로, 약간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개의 가벼운 핵이 뭉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은, 반응에 참가하는 입자 둘이 융합을 일으킨 다음, 그냥 하나의 핵만을 낳는 게 아니라 두 개 또는 세 개의 결과물(핵 +핵, 또는 핵+양성자, 핵+중성자) 을 낳습니다. 핵융합효율이 가장 우수해서 가장 먼저 실용화될 가능성이 있는 핵융합반응인 D+T 반응(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융합)도 그러하죠. 이 경우, 헬륨4와 중성자를 결과물로 내놓지요.
가벼운 원자핵 두 개가 합쳐지면, 이 때 발생하는 질량 결손에 해당하는 “들뜬 에너지” 가 합쳐진 핵에 남게 됩니다. 이 에너지는, 어떠한 형태로든 방출되어야만 안정한 핵이 될 수가 있죠. 그렇지 않으면 핵이 긴 시간 동안 안정된 상태로 있을 수 없습니다. 중성자를 쬐거나 다른 입자충돌반응 등으로 만들어지는 인공 방사성원소들 역시 이런 이유로 다양한 방사선을 방출하고 안정된 핵으로 변하게 되지요.
그런데, 가벼운 원자핵의 경우에는 에너지를 방출할 수단이 매우 제한됩니다. 예를 들어, 우라늄 등의 무거운 원자핵이 여분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수단 중 하나인 알파선 방출의 경우, 헬륨4 자체가 알파선이므로 이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지요.
베타선이나 양전자를 내놓는 건 어떨까요? 이 경우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베타선을 내놓는다면 핵 속의 중성자 하나가 양성자로 바뀔 텐데, 그렇게 되면 결과물은 양성자3, 중성자1의 구성이 되지요. 이 조합은 원래의 양성자2, 중성자2 의 조합보다 더 높은 에너지를 갖기 때문에 베타붕괴 때 에너지를 “내놓아야 한다” 는 조건을 위반합니다. 양전자를 내놓는 것도 마찬가지로, 양성자1, 중성자3 의 구성이 에너지가 더 높아서 일어날 수 없지요.
결국 남는 선택지는 매우 큰 에너지의 감마선을 내놓거나, 핵 자체가 분해되어서 여분의 에너지를 각각의 분해 생성물들이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큰 에너지의 감마선을 내놓는 것보다 핵 자체가 분해되는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실제의 반응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핵이 비대칭으로 쪼개지는 것이 됩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헬륨3 +중성자 의 조합이거나, 삼중수소 + 양성자의 조합으로 쪼개지는 두 경우가 거의 비슷하게 일어나지요. 반면 큰 에너지의 감마선만을 내놓고 안정한 헬륨핵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교과서에서 말한 저 반응의 확률은 10-6 이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개의 핵융합 관련 자료에서는 저 반응은 아예 빠져 있습니다. 예외가 있기는 한데, 그것은 현재 사실 여부를 놓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온핵융합” 계열이지요. 상온핵융합에서 저 “극히 드문 반응” 을 주목한 이유는 핵융합 반응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걸 증명하는 중성자 방출이 잘 포착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입니다만, 단순히 “변명” 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상온핵융합 관련 연구 전부가 100퍼센트 사기라고 치부하는 것은 섣부를지라도, 교과서에 실릴 만큼 명확히 밝혀지고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라고 볼 근거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낮은 확률의 반응을 마치 대표 반응이라도 되는 양 그림까지 첨부해 가며 내세우는 건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겠지요. 적어도, 현재로서는 가장 달성확률이 높은 핵융합의 대표 반응은 D+T 반응이므로 이것을 교과서에 싣는 것이 좀 더 낫다고 봅니다. 생성물에 중성자가 포함되므로 설명이 약간 더 복잡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편의성을 위해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도 않는 반응을 싣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by | 2009/05/05 15:20 | 교과서오류 | 트랙백(1)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교과서오류[12]에서 제기된 리플에 대한 추가설명.
셀프트랙백 합니다.교과서오류[12] : 중수소 두 개가 합쳐져서 헬륨4 핵이 생기는 핵융합반응?리플로 달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지고 또한 다른 독자분들에게도 글의 취지를 설명드리기 위해 별도의 글로 뺍니다.음... 우선 지적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먼저 드리며,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말씀하신 트집거리에 대해서 약간 의견을 달자면...어떤 핵반응을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무거운 핵의 붕괴에서는 최종적으로 안정한 핵이 될 때까지 감마선을 여......more
(물리2를 선택하는 비율도 별로 높지 않죠)
정확한 것을 따지면, Alias님 설명에서도 트집거리는 있거든요. ^^;
"매우 큰 에너지의 감마선을 내놓거나"라고 하셨는데, 하나의 감마선을 내놓고 안정화되는 핵반응은 거의 없으니까 큰 에너지의 감마선들을 "여럿" 내놓는 이라고 "정확히" 언급하셨어야 하고.
큰 에너지를 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중성자나 양성자를 내놓은 반응의 barrier가 무척 높다면, 터널링보다는 차례대로 감마선을 방출하면서 안정화되는 것이 주로 일어날테니깐, 저 반응에서는 barrier가 방출 에너지보다 낮다는 언급을 "꼭" 하셨어야 하고 등등 -_-a
편의성때문이라기보다는 고등학생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개념을 설명하기위해 단순화시켜서 보여준 도식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에서는 저 반응이 '대표반응'이라고 설명하지도 않았구만요.
저의 선생님께서는 H4 즉.. D + D 핵 융합식을 알려주셨지만요..
사실 좀 헷갈렸답니다.. 교과서엔 D + T 식이.. 선생님께선 D + D 식을..
그런데 둘다 이론적으론 존재하고 D + T 식이 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고
D + T 핵융합 발전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